제4장

하지만 바로 그때, 지우가 그를 발견했다.

녀석은 잔뜩 언짢은 얼굴에 이모가 가 버려 서운하기까지 해서,忍不住 불평을 터뜨렸다. “아빠는 왜 이제 와요! 예쁜 이모 다 가 버렸잖아요!”

박연주는 아들이 기분 나빠하는 걸 보고 일단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잘못 본 거겠지?

그 여자는 떠난 지 6년 동안 소식 한 번 없었고,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겠는가.

박연주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보며 물었다. “무슨 예쁜 이모? 네가 전화에서 말한 명의 말이야?”

“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금 김우미가 떠난 방향을 보며 조금 아쉬워했다.

지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까?

박연주는 아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갔으면 그냥 놔둬.”

그는 아들이 진짜 대단한 명의를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그 사람의 뒷모습은 꽤 젊어 보였다.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오히려 그는 이미 원장님에게서 ‘신의 손’의 연락처를 받아 둔 상태였다.

그분에게 부탁하는 편이 더 희망적일 것이다.

아빠가 자기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을 본 녀석은 조금 화가 났다. “아빠는 어떻게 그래요!”

방금 아빠를 위해 예쁜 이모에게 도와달라고 얼마나 애썼는데!

다 아빠가 늦게 와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라니!

지우는 울컥 화가 치밀어 아빠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짧은 다리를 놀려 씩씩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박연주는 아들이 갑자기 화를 내자 미간을 찌푸리며 엄하게 물었다. “멀쩡히 있다가 왜 갑자기 성질이야?”

지우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말했다. “아빠는 명의 일에 하나도 신경 안 쓰잖아요! 예쁜 이모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박연주는 녀석의 뾰로통한 얼굴을 보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녀석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못 믿지 마요. 내가 특별히 알아봤는데 엄청 대단한 분이라고요! 방금 엄청 어려운 수술도 하셨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못 하는 거!!!”

그럼에도 박연주는 여전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아들을 달랬다. “안 믿는 거 아니야. 다만 아빠 몸 상태는 아빠가 잘 알아. 이 고질병은 보통 사람이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안다는 그 이모도 장담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그보다 박연주가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이 녀석이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쓴다는 점이었다.

지난 몇 년간 해성시의 수많은 명문가 영애들이 앞다투어 그의 새엄마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예외 없이 모두를 배척했다.

심지어 박씨 집안과 가깝게 지내는 김미지조차 자기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박씨 집안의 작은 황태자의 ‘악명’은 해성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우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박연주는 상대가 딴마음을 품고 일부러 이런 수법으로 녀석에게 접근한 여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만약 그렇다면….

녀석의 생각을 끊어 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박연주는 덧붙였다. “아빠는 이미 진짜 ‘명의’를 찾았어. 오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집에 가야지. 그만 떼쓰고.”

지우는 그 말을 듣고 속이 답답해졌다.

아빠가 찾은 명의랑 예쁜 이모는 다른 사람인가?

그럼… 앞으로 예쁜 이모를 못 보는 건가?

비록 한 번밖에 못 봤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 이모가 너무 좋았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결심했어. 꼭 그 이모를 찾고 말 거야!!!’

병을 못 고쳐주면, 그냥 엄마가 되면 되지!

녀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고, 방금 전의 서운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김우미는 병원을 나온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복잡한 마음은 한참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그 사람과 이혼한 지 6년이나 되었고, 마음에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우를 떠올리자, 기분은 어쩔 수 없이 흔들렸다.

그 꼬마… 우리 소미랑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그렇다는 건, 두 사람이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는 뜻이었다!

누구랑?

김미지?

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김우미는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결혼했을 당시, 그녀는 몇 번이나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박연주는 전혀 그럴 계획이 없었다.

심지어 관계 후에는 매번 그녀에게 피임약을 먹으라고까지 했다….

박씨 집안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결혼 후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그녀는 시어머니 이미희에게 늘 압박과 구박을 받았다.

이런 사실들을 그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하자마자 그는 아이를 원했던 것이다!

김우미가 더 이상 모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 남자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단지 그녀가 자기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난날들을 떠올리자 김우미는 박연주를 향해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개자식, 진짜 개자식이야!!!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절친 서지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우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연아.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로 서지연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일 끝났어?”

김우미가 대답했다. “방금 끝났어. 이제 집에 가려던 참이야.”

서지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말했다. “무슨 집이야, 모처럼 해성시까지 왔는데 내가 한턱 쏴야지! 그리고 오늘 수술 그렇게 오래 했으면… 몸보신도 제대로 해야지.”

서지연의 말에 김우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네가 쏴. 주소 보내 줘. 내가 그리로 갈게.”

“응응! 좋아. 그럼 원조 레스토랑으로 와. 기다릴게!”

서지연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김우미도 핸드폰을 집어넣고 앞자리의 기사에게 말했다. “임 기사님, 저 저녁은 밖에서 먹을게요. 원조 레스토랑으로 가 주세요.”

“네, 넷째 아가씨.”

기사가 대답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30분 후, 김우미는 레스토랑에서 서지연을 만났다.

두 사람은 몇 달 만에 보는 터라, 서지연은 김우미가 나타나자마자 달려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우리 우미, 드디어 왔구나!”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김우미의 턱을 살짝 치켜들며 말했다. “어쩜 또 이렇게 예뻐졌어? 하늘도 참 불공평하지. 너한테 이런 미모를 주고, 그런 사기적인 재능까지 주다니. 질투 나서 죽겠네!”

김우미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강조했다. “첫째, 미모는 부모님이 주신 거고. 둘째, 재능은 확실히 타고난 거야!”

서지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뻑은!”

김우미도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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